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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멀리하면 상상의 세계를 잃어버리죠

[매일경제 2007-03-07]
책을 멀리하면 상상의 세계를 잃어버리죠

◆읽는 것이 힘이다 (3)◆

조순 전 부총리-소설가 김주영 대담

매일경제가 벌이고 있는 `읽는 것이 힘이다` 캠페인과 관련해 조순 전 경제부총리(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와 한국문단의 대표작가 김주영 씨(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가 최근 매일경제 미디어센터에서 활자문화 진흥을 주제로 대담을 했다. 조 전 부총리는 "사고력보다는 정보수집 기능에 치우친 영상매체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매몰되어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조 전 부총리는 한국 사회를 "제대로 된 말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규정했다. 말은 곧 사고인데, 사고력이 제대로 길러지지 않아서 품격 있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작가 김주영 씨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새 것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새로운 기계와 뉴미디어에만 열중하는 것 자체가 콤플렉스의 발로"라고 지적했다. "생각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힘이 곧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김 작가는 "읽는 행위는 사고력과 이야기 능력을 키워주는 가장 중요한 훈련"이라고 단언했다.

두 사람 모두 활자문화는 인류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조 전 부총리는 "읽는 문화가 힘을 잃으면서 점점 반지성적인 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며 강한 어조로 우려를 표시했고, 김 작가는 "읽는 문화가 사라지면 성찰하는 자세도 함께 사라진다"고 동의했다. 두 사람은 인류의 오늘을 가능하게 한 활자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 사회가 읽고 쓰는 힘을 바탕으로 재도약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순=제대로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느냐 아니냐가 그 나라 교육의 질을 말해줍니다. 미국의 많은 대학이 스피치 코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 코스를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죠. `대학에 이런 코스가 있다니…` 하고요. 스피치 코스를통과해야만 졸업자격을 주는 걸 보고 한번 더 놀랐습니다. 나이 지긋한 교수들이 15명 정도 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정해 줍니다. 읽기 쓰기 교육이 있어야지만 민주주의가 돼요. 말을 제대로 해야 남을 설득할 수 있고, 토론문화가 정착돼야 민주주의 토대가 마련됩니다.

▶김주영=사회 구성원 모두가 읽고 쓰는 데 점점 서툴러져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영상매체에 너무 매몰돼 있다고 봐요. 영상문화가 활자문화를 잡아먹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죠. 영상매체라는 것은 시각적으로 생동감 있는, 진전이 아주 빠른 매체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활자 매체는 이에 비해 즉각적이고 돌격적인 면이 떨어지죠. 하지만 그 대신 활자매체는 사고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우리는 너무 활자매체가 지닌 사고의 힘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봐야 해요. 영상매체나 인터넷매체에 매몰되어 상상력의 세계를 잃어버린 절름발이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해요.

▶조순=김 선생께서 말씀한 것처럼 영상매체는 사고력을 길러주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정보수집 기능밖에 없어요. 그래서 전 항상 읽는 것을 좋아해요.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읽는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전 영원한 학생입니다. 결국 읽는다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스스로 사고를 하는 힘이 읽기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읽는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주영=전 세계문학전집을 고등학교 때 다 읽었죠. 영상매체가 없기도 했고 또 전집 하나는 읽어야 멋있다고 생각되던 때이기도 했죠. 그래서 오늘날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봐요. 당시 그런 학습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는 것이죠.

▶조순=인터넷에서 떠도는 정보도 텍스트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기능은 독서가 아니라 정보 습득입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링컨의 연설문을 부분 발췌하는 것은 독서가 아니라 정보의 습득인 셈이죠. 책은 곧 사고인데 인터넷 서핑은 이런 과정이 전혀 없는 것이죠. 한국의 젊은이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데 이는 한 국가가 지녀야 할 지성의 힘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방증이죠.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활자문화를 발달시켜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김주영=한국이 총량 기준으로 세계 10위권 출판대국이라는 것은 정말 허수예요. 숫자만 채우는 것이지 실제로 선진국 같은 알찬 내용은 없다는 것이죠. 우리 국민 4명 가운데 한 명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아요. 정말 부끄러운 현상입니다. 책을 읽게 하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야 해요.

▶조순=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양서를 읽는 것을 말하죠.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양서가 별로 없어요. 무엇보다 좋은 책을 권장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해요. 또 읽을 만한 책이 공급돼야 하고요. 그러기 위해선 이에 앞서 배우고 싶다는 학구열을 키워야 합니다. 즉각적인 만족만 좇는 문화가 만연해 있어요. 이런 문제는 인터넷 시대인 요즘 청년들을 먼저 나무랄 게 아니라 기성세대가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책을 제작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준 높은 책을 읽게 할지 기성세대 모두가 고민해야 합니다.

▶김주영=`새것`에 대한 지나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지털카메라, MP3, 노트북PC 등 새로운 것을 소비하는 것이 경쟁력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이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콤플렉스 수준이에요. 새것만을 좇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의 가치를 찾는 노력도 중요한데 말이에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소유하는 경쟁만을 하다보니 사회가 점점 `생각없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어요. 큰일입니다.

▶조순=새것에 대한 콤플렉스와 허세 부리기가 지나치게 만연해 있어요. 속은 텅텅 비었으면서 겉만 채우려는 마음씨, 이런 것들이 반지성적인 행위입니다. 좋은 습성을 갖기는 어렵지만 나쁜 습성을 갖기는 쉬워요. 그래서 사회가 결국 이렇게 된 거예요. 정치와 경제의 질이 저하된 까닭도 여기에 있죠. 정체성이 상실된 까닭이죠.

▶김주영=언제부터인가 우리 생활문화가 다이제스트화됐어요. 단문 단답식 풍토죠. 교육과 제도 전반에 걸쳐서 그래요. 생활문화 자체가 요약본이죠. 유장한 삶의 의미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성찰적인 사회가 없어진 것이죠. 신문이나 서적을 읽어야 유장한 삶을 복원할수 있습니다. 얼마 전 정몽준 의원이 자신의 아버지인 정주영 회장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 회장은 평소 "부를 일궈내는 방법을 나는 신문 읽기에서 터득했다"고 종종 말씀하셨다고 해요. 정 회장은 어렸을 때도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이장집에 가서 신문을 빌려 읽었다고 해요. 그분에게 세상을 사는 지혜를 가르쳐준 것은 정규교육이 아니라 신문 읽기였던 셈이죠. 이처럼 읽는 행위는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조순=사람들이 말의 중요성을 잊어버렸어요. 말이 빈약한 사람은 생각도 적습니다. 우선 밖에 즐비한 간판들을 보십시오. 말초적인 제목이 달린 간판뿐이잖아요. 우리사회 말이 전부 저질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반지성적인 분위기를 개선해야 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몇 가지 당부하는 게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노력 이상의 대가를 바라지 마라. 두 번째는 활자로 된 것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인문학이 죽어간다고 교수들이 성명을 내고 하는데, 성명서를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오랜 세월에 걸쳐 반지성적인 분위기를 도려내야 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선 하루 몇 쪽만이라도 활자를 읽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해요.

▶김주영=일본에선 활자문화진흥법을 만들었죠. 벌써 활자문화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도 위기감을 느껴야 해요.

▶조순=`국가의 품격`이라는 책을 쓴 후지와라 마사히토는 제일 중요한 것은 첫째도 일어, 둘째도 일어, 셋째도 일어라고 했어요.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유가와 히데키라는 사람은 `책안의 책`이란 책을 냈어요. 물리학자인 그는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복잡한 말들을 간략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했어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과학적 용어를 쉽게 표현하는 방법을 문학에서 배운 것이죠. 과학은 제 발로 혼자 걸어가는 게 아니라 인문학과 함께 가는 것이죠.

▶김주영=외국 작가들하고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종종 갖습니다. 그런데 모임에선 한국작가들은 밥만 먹고 사라져요. 외국 작가들은 밤 11시까지 책에 대해서 토론을 해요.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힘이 바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고력 아닌가 생각해요. 단순히 예산을 지원하고 도서관을 짓고 하는 것만으로는 안돼요. 학교에서는 지속적으로 읽는 것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야 하고, 책임있는 언론이나 단체에서 읽기 운동을 벌여야 해요.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죠.

▶조순=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국어 교육이 없어요. 그저 맞춤법을 가르치는 걸 국어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회생활 하면서 가장 필요한 일은 읽고 해독하는 능력입니다. 읽고 해독하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국어 교육이에요. 일단 대학에 들어오면 일정한 분량의 책을 강제로라도 읽혀야 할 필요가 있어요. 교육이라는 것은 외우는 게 아니라 읽고 쓰는 거예요. 읽고 쓰게 해야 나라가 삽니다.

학생들에게 인터넷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각자가 하루 몇 쪽만이라도 괜찮은 책을 정해서 읽으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태도가 유연해지고 삶도 유연해진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조 순

△1928년생 △서울대 상대 △미국 UC버클리대 경제학박사 △육사 교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국은행 총재 △초대 서울시 민선시장 △초대 한나라당 총재 △초대 민주국민당 대표 최고위원 △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김주영

△1939년생 △서라벌예술대학 △소설 `휴면기`로 등단 △제8회 이산문학상 수상 △제6회 대산문학상 수상 △제2회 이무영 문학상 수상 △제5회 김동리문학상 △중앙일보 라이팅 코치 △현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 △ 대표작 :`객주` `화척` `멸치` `활빈도` 등

■ 협찬 = 교보문고 / SK텔레콤

 
■ 후원 = 문화관광부 / 대한출판문화협회 / 한국출판인회의

[사회 = 허연 문화부 차장 / 정리 =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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