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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애인과 같아… 편식해도 상관없어요

[조선일보 2006-03-03]
책은 애인과 같아… 편식해도 상관없어요

정은숙시인의 '내가 읽는 법'


▲ 시인 정은숙  

좋아하는 것을 읽어라…

뭘 배워야 한다는 생각과 의무감이 독서의 즐거움을 앗아간다

‘책을 읽으면 행복합니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 건물 벽에 걸린 독서 캠페인용 현수막이다. 올 초 내걸린 이 현수막의 카피를 쓴 사람은 시인이자 출판사 마음산책의 대표인 정은숙(44)씨.

“회의를 열었어요. ‘책 읽는 대한민국’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었고, ‘지식선진사회 책이 만든다’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책을 우리나라와 연결시키는 것도, 책을 읽어 무엇을 하자는 것도 싫었어요.” 그녀는 “책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즐거운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각 스님의 수행기인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 대형 베스트셀러를 기획·편집했으며, ‘편집자 분투기’라는 책을 낸 저자이기도 한 정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책 전문가. 책 읽기의 내공을 바탕으로 신문과 잡지에 기고도 활발하게 한다. 다양한 독서이력을 자랑할 만한 그녀의 책 읽기 비결은 의외로 편식이다. “책은 유희라고 믿어요. 책은 행복하기 위해 만나는 ‘글자로 된 애인’이니까요. 음식을 편식하면 몸에 해롭지만, 책은 좋아하는 것을 읽어야 해요. 그래야 책과 친해지죠.”

출판사 사장의 사무실 서가라면 사방이 책으로 가득 찬 공간을 상상하겠지만 그녀의 사무실 풍경은 사뭇 다르다. 서가는 책상 뒷벽만 차지하고 있을 뿐. 정씨는 “늘 즐기는 책 1000권 정도만 한쪽 벽에 진열했다”고 했다.

그녀의 서가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시집과 디자인책. 그녀의 서가에서 없는 것은 과학과 음악 서적들. “사실 전 황우석 사태가 뭔지 잘 몰라요. 과학사 책은 읽어본 적도 없고요. 애인을 여럿 두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책도 모든 분야를 골고루 사랑할 순 없어요.”

어떤 시를 좋아할까? 그녀는 “마음의 현을 건드리는 시”라고 대답하며 송재학의 ‘얼음시집’을 펼쳤다. ‘풀베기’라는 시에 형광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풀을 벤다/ 햇빛은 이렇게 멀리 자라 있어도/…’

“존재의 의미를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시어들은 무척 감상적이에요. 감상적인 시어를 철학적인 사유에 접목한 솜씨에 반해서 두고두고 읽어요.”

또 한 권 꺼내 들었다. 황인숙 시집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다. 포스트잇이 ‘폭우’라는 시에 붙어 있다. “읽어보세요. 너무 좋잖아요? 폭우라는 현상이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와 폭우를 표현하는 시어가 아주 달라 허를 찔린 느낌을 줘요.”

정씨는 “시를 즐기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책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제도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시만 보면 행을 나누고 의미 분석부터 하려고 들어요. ‘이육사의 시에 나타난 조국의 의미는 무엇이냐’ 뭐, 이런 식이죠. 시만 보면 의미를 따지고 분석하려 드니 자연 ‘시는 골치 아픈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죠.” 책도 마찬가지다. “뭘 배워야 한다는 생각, 유식해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독서의 즐거움을 앗아가요.”

디자인 책은 마음이 우울해질 때 꺼내본다. 책장 사이로 ‘한국 전통 문양집’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제목이 눈에 띈다. 정씨가 ‘마음 속의 미소(A Smile in the Mind)’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유머를 담고 있는 디자인만 모은 책이에요. 여러 번 봤지만 다시 봐도 웃음을 주는 마술 같은 책이죠.”

책 디자인을 보여주는 책도 그녀가 즐겨 읽는 분야. 갑자기 생각난 듯 정씨가 ‘책 디자인 500년(Five Hundred Years of Book Design)’이란 원서를 가져왔다. 안식년으로 미국에 체류 중인 한양대 정민 교수가 국제우편으로 선물한 책이다.

“감명 깊게 읽은 부분에 줄을 쳐놓거나, 그 줄 옆에 짧은 느낌을 적은 책, 선물한 사람의 마음이 담긴 책 등 책에는 사연이 더해져요. 같은 제목의 책이라도 나만의 유일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 또한 책이 주는 즐거움 아닐까요?”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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