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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가 우글거리는 세상

[조선일보 2006-03-03]
책벌레가 우글거리는 세상

사막의 책벌래… 낙타 400마리에 11만 장서 늘 싣고 다녀

한국의 책벌래… 漢書로 이불 덮고, 論語 세워 외풍 막아

책벌레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다. 그들은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고 외친다. 책벌레의 세계에도 신화와 전설, 역사가 있어 책을 통해 전해오고 있다.

책벌레의 꿈은 개인 도서관을 만들 정도로 책을 수집하는 것이다. 10세기 페르시아의 총리 압둘 카셈 이스마엘은 이동 도서관을 만든 전설적 책벌레다. 그는 여행할 때 11만7000여권의 애장본과 잠시라도 헤어지기 싫어 400여마리의 낙타에 나눠 싣고 다녔다. 낙타들은 제목 순서대로 정해진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다. 덕분에 그는 여행 중 쉽게 책을 찾아 읽었다.

책벌레들에게 책은 현실 세계의 고통을 막아줄 울타리다. ‘책만 읽는 바보’로 통했던 이덕무는 추운 겨울밤 이불 위에 한서(漢書) 한 질을 덮고 ‘논어’를 병풍처럼 세워 외풍을 막았다. 흔히 공부방을 서재(書齋) 서실(書室) 서옥(書屋)이라고 하지만, 중국 나라의 시인 육유는 ‘서소(書巢)’라는 말을 처음으로 썼다. 책이 여기저기 뒹굴어 있는 공부방에 들어앉으면 밖에 나갈 일도 없고, 바깥 일에 신경 쓸 일도 없이, 책으로 만든 둥지에서 즐겁다는 것이다. 둥지만큼 좁은 책방이라는 얘기도 담겨있어 청빈한 문인의 꼿꼿한 정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책은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소녀 시절 공립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의 나무를 보면, “책을 읽기 전에 본 나무와 똑같은 것이지만, 책을 읽고 나서 본 나무와 그 풍경은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책을 통해 내면의 눈이 뜬 상태에서 육체의 눈에 비친 외부 현실은 과거와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보이는 법이다.

책은 현실적 탈출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여인뿐만 아니라 책도 사랑했던 애서가(Booklover) 카사노바는 베네치아에서 모함에 빠져 투옥됐다. 그는 감옥의 다른 죄수와 돌려가며 읽은 책의 여백에 탈출 계획을 써서 교환했고, 결국 탈옥에 성공했다. 당시 그가 이용한 책은 ‘성서’였다고 한다.

독서삼매경에 빠지면 자식도 몰라보는 법이다. 실제로 그랬다. 20세기 초 독일 역사학자 테오도르 몸젠은 흔들리는 마차에 앉아 책 읽기에 심취했는데, 옆에 앉은 아이가 자꾸 시끄럽게 굴자, 화를 내며 “얘, 네 이름이 뭐니?”라고 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놀란 표정으로 “아빠, 저는 당신의 아들 하인리히예요”라고 했다.

책을 탐하는 벌레와 책을 아끼는 벌레는 모두 똑같다. 책을 아끼는 벌레는 남에게 책을 빌려주길 싫어하고, 책을 탐하는 벌레는 남의 책을 빌려가서 너무 아끼느라 숨겨놓는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과 동시대의 선비 정구는 한 권의 책을 놓고 막상막하의 욕심을 겨루었다. 허균은 책을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는 정구에게 편지를 보내 점잖게 꾸짖었다. “옛 사람은 책을 빌려주면 항상 돌아오는 것이 더디다고 했다지요. 더디다는 것은 1년이나 2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제 책을 빌려드린 지가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0년 동안 돌려주지 않은 사람이나, 10년이 지나도 잊지 않는 사람이나….

조선 시대 선비 송준길은 책벌레였지만, 남에게 책 빌려주길 아끼지 않았다. 단, 조건이 있었다. 남에게 책을 빌려주었다가 되돌려 받을 때 책에 보풀이 일지 않았으면 책을 열심히 읽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상대방을 심히 나무랐다.

책은 제도 교육의 사각 지대에서 수많은 독학자들을 낳았다.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은 11세 때까지만 학교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의 서가에 꽂힌 500여권의 책을 읽으며 학식과 교양을 쌓았다. 시인-소설가 장정일(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초빙교수)씨는 중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다. 그러나 그는 사춘기 시절 300권 이상의 ‘삼중당(三中堂) 문고’를 독파하면서 독학의 위대함을 체현했다. ‘열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중략) 교련 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문고/ 건달이 되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쓰다듬던 삼중당문고(중략)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이 끼고 나온 삼중당 문고/ 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 문고(중략)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배때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 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 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시 ‘삼중당 문고’ 중에서)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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