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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메트 만화사건의 겉과 속

[한겨레신문 2006-02-17] 마호메트 만화사건의 겉과 속  

마호메트 만화사건의 겉과 속

이슬람은 신적 존재를 ‘그려선’ 안 되는

재현과 형상을 거부하는 문명

이번 사건은 ‘풍자’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 문화적 대립이자 갈등

서유럽과 이슬람 사이의 ‘대충돌’ 기미까지 보이던 마호메트 풍자화 사건이 그럭저럭 수습 국면을 맞고 있다. 폭탄 두건을 쓴 마호메트 등 12개의 풍자만화를 실어 소동을 일으킨 문제의 덴마크 신문은 “사과할 수 없다”던 당초의 강경 입장을 바꾸어 “미안하게 됐다”로 물러서고, 이 신문을 지원하기 위해 풍자화를 전재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외쳐댔던 서유럽 12개국 신문들의 맹렬한 기세도 머쓱하게 꼬리를 내린 형국이다. 사태가 이 정도에서 진정된 데는 이슬람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미국과 영국 두 나라의 정치적 유화 발언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서유럽과 이슬람 사이에 발생해온,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발생할 수많은 갈등의 한 말초적 폭발에 불과하다. 더 본질적인, 본질적이기 때문에 ‘정치’만으로는 풀 수 없는 대립과 갈등의 요소들은 여전히 잠복해 있다. 그 대립과 갈등의 잠재적 폭탄들은 우리에게도 결코 ‘강 건너 불’ 같은 구경거리가 아니다.

이번의 풍자만화 소동에서 우리가 눈 여겨 볼 것의 하나는 서유럽의 우울과 공포라는 문제다. 19세기가 서유럽 제국주의 팽창의 절정기였다면 20세기는 유럽의 세계 지배가 쪼그라들기 시작한 시대다. 그 세력 위축은 지금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 ‘유럽의 우울’이다. 이 쪼그라든 서유럽은 유럽을 유럽이게 하는 ‘유럽의 정체성’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서유럽 국가들이 경험하게 된 것은 ‘비서구 세력’들의 부상이라는 사태 진전만이 아니라 유럽인들이 오랫동안 ‘이질적’이라 생각했던 인구학적 문화적 요소들의 유럽 본토 유입 사태다. 한때 서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였던 지역들에서 다수의 인구가 유럽으로 흘러들어 빠르게 팽창하고, 그들과 함께 들어온 문화요소들이 유럽의 핵심 지역들에 퍼지게 된 것이다. 유럽 내부의 무슬림 팽창은 이런 사태의 단적인 예다. 유럽은 비서구 요소들에 행랑채 내주고 안방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른 것 아닌가? 이것이 ‘유럽의 공포’다.

이 공포의 밑바닥에는 유럽이 결코 내줄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문명의 토대’ 문제가 깔려 있다. 현대 유럽문명의 토대는 기독교가 아니라 ‘세속주의’(secularism)다. 세속주의의 핵심은 정교분리의 원칙이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국가와 교회를 분리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알맹이가 세속주의다.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이 ‘세속도시’의 신질서는 근대 유럽의 발명품이자 수출품이고 지금의 유럽 국가들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유럽문명의 정체성이다.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인가”라는 것이 유럽연합 가입 허용의 첫 번째 조건이자 기준이 되어 있는 것도 그래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속주의 문명은 어떤 신성한 것도 남겨두지 않는다. 그 문명의 질서 안에는 신도 교회도 국가도 풍자와 농담의 대상이 된다. 신이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인간이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근대 이전의 정치질서에서 왕들이 비교, 풍자, 비판을 죽도록 싫어했다면 세속도시에서 이것들은 독재와 전체주의를 막아내는 힘의 토대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선거와 풍자’라는 것이 세속도시의 사고방식이고 문화다. 이 문화의 최대 가치에 속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곳에서만 비판과 풍자가 가능하다. 풍자는 모든 신성한 것들을 땅바닥으로 끌어내리고 모든 권위들을 구멍 내어 웃음의 대상이 되게 하는 대신, 신성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짓누르는 억압권력을 막아낼 수 있다고 세속문명은 생각한다. 비판과 풍자를 견디어 낼 힘이 있는가가 세속도시의 정치판은 물론이고 그 문명의 테두리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첫 번째 능력이다.

이 문명의 관점에서 보면 이슬람 창시자에 대한 풍자만화를 신문에 싣는다는 것은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다. 서유럽 신문들이 표현의 자유 를 내걸고 만화를 동조 게재한 것도 그래서다. 그들이 발끈해서 “누가 마호메트를 두려워하랴?”며 나선 데는 ‘유럽 문명을 위협하는 사태’들이 지난 몇 년 여기저기서 발생했다는 배경 사정도 들어 있다. 인도 출신 작가 샐먼 루시디가 이슬람에 모욕적인 소설을 썼다 해서 살해대상으로 지목된 일, 그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했던 사람의 피살, 이슬람에 비판적인 영화를 만든 한 네델란드 영화감독이 칼에 찔려 죽은 사건 등등이 그런 배경 사정이다. 만화소동에도 비슷한 사정이 있다. 한 아동문학 작가가 아이들에게 읽힐 요량으로 이슬람을 소개하는 책을 쓰면서 마호메트 인물 그림을 그려줄 삽화가를 구하는데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문제의 신문 문화부장이 “이거 뭐 이래?”라며 34명의 만화가들에게 마호메트 ‘풍자화’를 그리도록 청탁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그 중에서 ‘용감하게’ 청탁에 응한 사람이 12명이다.

아이들을 위한 책자가 이슬람 비판서가 될 리 없고 삽화가들이 두려워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그림꾼들이 선뜻 나서지 못한 것은 신성 존재를 그림으로 그려낼 수 없다는 ‘재현불가’의 이슬람 전통을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려선 “안 된다”는 것이 이 경우의 재현불가론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우리는 고대 그리스 이후 근대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성 존재들을 그림으로, 조각으로, 아이콘으로 표현해온 ‘형상의 문명’과 ‘형상을 거부하는 문명’의 대립을 보게 된다. 이것은 풍자의 문제가 아니라 재현의 문제 자체를 둘러싼 근본적인 문화적 대립이자 갈등이다. 재현할 수 없다면 풍자도 불가능하다. 이런 대립 속에는 경전 ‘해석’의 방법과 자유에 관한 문제, 여성 인권, 문화적 차이의 존중과 통합, 공동체 정체성의 유지 같은 깊고도 본질적인 문제들이 줄줄이 연관되어 있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이것이 지금 서유럽과 이슬람의 숙제이고 세계 전체의 과제다. ‘근대성’과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건 새롭게 정립해나가야 하는 것이 이슬람의 숙제라면 단순 똘레랑스를 넘어 ‘다문화의 유럽’을 만드는 것은 유럽의 숙제다. 우리는 이런 숙제들이 우리 자신의 안녕과도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연결의 사정을 아는 데는 정치나 경제 지식만으로는 어림없다. 거기에는 문화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훈련의 사회적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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