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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성장단계 무시한 논술

[중앙일보 2006-01-20]


[시론] 지적 성장단계 무시한 논술

대학별로 논술시험이 한창이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교육인적자원부의 제약조건 때문에 논술의 형태가 좀 더 다양하게 변화한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이 시험이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있지 못하며, 무엇보다 현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성실하게 이수한 학생들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험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논술시험은 그 자체가 사고력과 읽기.쓰기 능력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형태의 시험이 내포하고 있는 타당성이다. 현재 우리 대학입학제도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 시험을 자구대로 해석하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평가하는 시험이다. 이 시험에도 언어.수리.사회탐구 영역들이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의 지식과 사고 및 읽기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수능시험에서 부족한 점은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에 대한 평가다.

대학의 논술시험은 이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기 저기서 정체불명의 시험을 참조할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능력 중 중요한 부분인 글쓰기 능력을 평가하면 된다. 실제로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이나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에세이 시험은 글쓰기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부분이 크다.

문제는 어떤 형태의 글쓰기 평가를 선택할 것인지다. 현 논술시험은 고등학교 졸업생의 글쓰기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으로 적절하지 않다. 글이라는 것은 다양한 형식이 있고, 지적 성장도 단계와 과정이 있다. 각 대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논술시험은 학문적으로 분류하면 '종합 글쓰기(Synthesis Writing)'에 가깝다. 이러한 글쓰기는 가장 고도의 지적 사고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형식으로,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요구된다. 소위 학문적 글쓰기에서 관련 문헌을 참조하고 통합한다는 것이 이러한 글쓰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과정은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훈련돼야 하며 우리나라 대학 실정에서 보면 대학원 과정에서나 겨우 훈련이 가능하다. 대학에서 실시하는 논술시험은 이러한 형식의 글쓰기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꼴이다. 그만큼 시험의 타당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논술시험에서 지문을 제시하는 것은 아직도 지식의 양 위주로 평가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이나 프랑스의 에세이 시험은 읽기 지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글은 자신의 경험이나 그동안 읽은 책, 또는 주변의 사례를 통해 논지를 전개하면 된다. 물론 독서를 많이 한 학생이면 자신이 읽으면서 깨닫고 고민한 내용을 담을 것이며, 경험을 통해 인생의 진리를 고민하고 깨달은 학생이면 그것을 토대로 논지를 전개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학생이라면 논리 전개나 내용 구성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 사고의 깊이, 그리고 글을 통해 얼마나 일관성 있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평가할 수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사고는 반드시 어떤 특정 글에 기반해야 할 필요는 없다. 사색의 결과가 중요하지 되뇔 수 있는 지식의 양이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책은 사고를 일정한 틀 안에 가둬 둘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자신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사색하고,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이 글 속에 잘 전개돼 있으면 그 글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논술시험은 또 다른 사교육을 조장하고 있을 뿐 학생들의 지적 성장 단계와 교육과정에 비추어 타당성이 결여된 시험이다. 더 이상 대학이 이런 시험을 통해 지적 횡포를 부리지 말고 본분에 충실했으면 한다.

이병민 서울대 교수·영어교육 및 비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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