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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유물을 담는 그릇

박물관은 유물을 담는 그릇
60년만에 거처 마련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윤의식 _ 순천향대학교 겸임교수/민족건축인협의회 부의장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반도 삶의 흔적인 유물이 이제야 제 집을 가졌다. 민중들의 삶 마냥 그 흔한 집하나 갖지 못하고 셋방을 전전한지 60년 만에 고단한 여정을 끝내고 용산에 거처를 마련했다. 일제에서 해방 아닌 광복으로 맞이한 1945년 12월 경복궁에서 시작한 여정은 1986년 조선총독부 건물까지 이어져 갖은 서러움을 겪은 끝에 1995년 국제현상설계를 거쳐 2005년 국립박물관이 들어섰으니 기쁘고 축하할 일이다.

단순한 형태, 절제된 엄숙함

1995년 건축계는 국립중앙박물관 현상설계 당선자가 국내 건축가라는 데 흥분하였다. 46개국 341점이 출품되어 경합을 벌였고 심사과정도 국제기준에 맞는 투명한 과정을 거쳐 진행된 현상설계에서 외국의 유명건축가들을 제치고 당선된 일은 우리의 자존심을 살리기에 충분하였다. 박물관을 온전히 국내 능력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2005년 오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박물관을 찾았다.

건물은 단순한 형태를 취하면서 절제된 엄숙함을 느끼게 하여 종묘의 이미지가 느껴지는 외관을 보여준다. 현상설계에서 밝혔듯이 산(남산)과 물(거울못)사이에 수평의 평안한 성곽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매스는 화강석을 다양하게 표면가공을 하고 디지털 부호처럼 배열하여 현대적인 느낌을 주며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다만 대중교통의 이용이 불편해서인지 주 진입부로 진입하는 관람객이 적어 거울못을 거쳐 보는 박물관의 외관과 긴 성벽사이에 열린마당을 만들고 그 틈으로 남산을 보여주고자 했던 설계자의 의도를 관람객이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지하주차장을 거치면 바로 열린마당으로 통해 박물관으로 연결됨으로 거울못을 거쳐 진입마당까지 내려와서 건물을 보아야 하는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다.

열린마당을 통해 으뜸홀로 들어서면 컨벤션센터같은 대형공간에 원형천정 사이로 쏟아지는 빛이 가득찬 중정이 역사의 거리로 이어지고 역사의 거리를 통해 각 전시장으로 연결된다. 우선 공간 크기에 의한 탄성을 자아내고 이어지는 회랑의 깊이감이 동선을 자연스럽게 경천사지 십층 석탑까지 관람객을 유도하여 전시장으로 진입하게 한다.

직선의 축은 중간의 원형광장과 천창의 빛으로 채워져 밝은 거리를 연출하지만 라임스톤의 색과 어우러져 쇼핑몰에 온 듯한 착각이 들며 상업적 가벼움과 흥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역사의 거리는 각 층이 틔여 있어 공간의 다양한 경험과 관람객이 위치를 쉽게 인식하게 하여 전시물을 관람하는데 도움을 주며 지친 눈을 쉬게 해준다.  

이제 이 집의 주인인 유물을 만나러 전시장으로 들어가 보자. 전시장은 역사의 거리 양옆으로 배치가 되어 있어 차분하게 유물을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관람자의 구두소리와 두런거리는 소음이 우선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밝은 조도로 시선을 유물로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군데군데 뚫어 놓은 얇은 세로창으로 외부의 빛이 세어 들어와 유물로 향한 시선을 방해(현휘현상)하기도 하고 유물 양옆으로 창이 있어 외부의 빛이 밝아 불상이 어둡게 보여 관람객의 시선이 외부로 향하게 하기도 한다. 어수선하다. 바닥재는 구두 발자욱 소리를 흡수할 수 있는 소재로 했어야 할 것 같고 흡음재의 역할이 한정적이라면 배경음악이라도 흐르게 하여 소음을 줄였어야 했다.

집이 사람을 담는 그릇이듯 박물관은 유물을 담는 그릇이어야 함에도 유물이 돋보이지 않고 건물이 우선 드러나고 개념이 우선되어 역사의 거리가 저자거리의 어수선함으로 채워진다면 유물은 아직도 제집을 갖지 못한 것이 아닌가. 역사의 거리 끝에 경천사지십층석탑은 하늘로 높이 솟아오른 시원함과 쓰러질 듯 서있는 긴장감은 보이지 않고 부잣집 거실의 장식용 석물처럼 앉아 있다. 석탑이 자리하기에는 좁아 보인다. 으뜸홀의 원형광장에 자리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고 돌아보게 된다.  

유물이 박물관의 주인

박물관은 유물을 수집하고 수납, 전시하는 것이 기본적 기능이라 하겠다. 전시 기능이 확대되어 문화의 유희적 경험과 교육 기능을 아우르는 공공문화시설의 성격을 가지게 됨으로 전시유물뿐만 아니라 관람객의 배려도 필요하겠지만 유물이 박물관의 주인이 되어야함은 이론이 없다. 과거의 시간을 느끼고 유물을 감상하기에 적당한 적극적인 공간구성 연출과 배려가 필요하겠다. 국제현상설계를 통해 이룩된 박물관에서 건축가의 생각을 읽어내고 벅찬 감격을 기대한 것이 유물전시장을 둘러보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반만년 역사의 유물이 박물관을 장식하는 소품으로 전락한 듯한 느낌은 건축가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나 조상에게 죄송한 일이다. 그렇다고 상심하거나 박물관 건립자체를 폄할 일은 아니다. 건물은 지어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의 내용을 잘 담아내고 가꾸어 가면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기에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잘 다듬어 간다면 후세에 자랑스러운 박물관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기대한다.

옛 일을 떠올려 현상설계당시 건축가의 이야기를 보면 ‘외관 형태에서 한국적 느낌을 받기는 힘들더라도 장인정신에 입각한 재료의 사용이나 돌, 계단, 담장 등의 공간 체험, 즉 건축양식이 아닌 우리의 정서를 통하여 충분히 한국적 정신은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의도는 공간의 크기가 주는 새로운 경험 이외에 별다른 이야기를 찾아내기 어려웠다. 오히려 침묵하는 외관형태에서 한국적 느낌을 받는 것은 아이러니다. 건축가의 고민이 시공까지 잘 전달되지 않은 듯한 그래서 작은 디테일에서는 건축가의 생각이 표현되지 않은 듯하다. 이는 개관 기념식에 초대된 400명 중에 설계에 관여한 그 누구도 초청되지 않은 것을 보면 건축가는 박물관 건립에 소외된 듯이 보이며 이는 건립과정에서도 시공에 깊이 관여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또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을 기념해 신문과 방송이 요란법석을 떨었지만 대부분 설계자의 이야기는 없었다. 언론에 따르면 박물관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장관이 바뀔 때마다 장관 취향에 따라 건물 세부 디자인에서부터 옥외 조경에 이르기까지 오락가락 바뀐 설계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하고 조경가의 이야기가 "석탑이나 석등을 옥외 공간에 전시하는 방법에서부터 박물관 뜰에 동산을 만드는 일까지 조경 설계자의 뜻보다는 행정 관료의 의사가 우선했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뛰어난 건축 작품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우리나라 도시 경관이나 건축 형태가 선진국에 비해 뒤진다"고 지적하며 건설교통부가 건축문화 선진화위원회의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하는데 건축문화 선진화는 이 같은 위원회 설치에 앞서 건축 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박물관에 유물이 주인이 되지 못한 느낌과 박물관 건립의 주체인 설계자가 소외되는 현실을 보며 잊혀져 가는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처럼 95년의 감격이 쓸쓸한 독백으로 어두운 그림자로 남는 것은 한없는 아쉬움이지만 극복해야할 오늘의 과제다. 다시 한번 박물관 건립을 축하하며 그간의 건축가의 노력과 마음고생을 위로하며 건축이 문화행위임을 인식하여 설계자를 제대로 대접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엄중히 물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는 건축설계 관련자들의 노력이 필요한 숙제로 다 같이 나누어 져야할 짐이다.

유물의 편안한 안녕을 기원하고 지금부터 하나하나 우리의 박물관으로 제대로 만들어 가기 위한 관심을 부탁드리며 올해가 가기 전 국립중앙박물관의 집들이 행사에 꼭 가 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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