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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지식은 인류 사유의 요람

[헤럴드경제 2006-05-16]
[책을 읽자] 활자 지식은 인류 사유의 요람

TV는 휘발성 이미지 과잉… 폐쇄적 중독성 야기

종이읽기는 논리ㆍ분석력 제고… 무한 상상력 원천

`책 읽는 여인`은 여러 화가의 작품에 등장한다. 렘브란트와 마티스, 르누아르와 피카소 같은 거장도 책 읽는 여인을 캔버스에 담았다. 프라고나르는 황금색 드레스를 입은 채 책 읽는 여인을 그렸고, 프랑수아 부셰는 책을 읽으며 루이 15세를 기다리는 퐁파두르 후작 부인을 묘사했다. 도대체 왜 미술계 거장들이 책 읽는 여인을 앞다퉈 화폭에 담아냈을까.책 읽는 모습은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외모에서 풍기는 단순한 아름다움보다 안에서부터 스며나오는 `사유의 미`를 뽑아냈기 때문이다. 남녀를 떠나 요즘은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볼 기회가 흔치 않다. 세인들과 활자 사이가 점차 벌어졌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3분기 한국 가구의 `서적 및 인쇄물` 구입 월 평균 지출액은 고작 1만397원. 신문ㆍ잡지대금도 포함된 액수인데, 신문 구독료(월 1만2000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이 단 한 권의 책도 사 읽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이ㆍ미용 또는 장신구 구입엔 약 6배에 이르는 돈을 쏟아부었고, 외식비도 훨씬 더 많은 액수를 기록했다.

같은 활자매체인 신문도 사정은 마찬가지. 판촉 과열과 인터넷의 보급에 무가지까지 등장하면서 산업뿐 아니라 매체의 위기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특히 젊은층의 활자 기피 현상은 두드러진다. 따라서 종이신문 독자의 평균 연령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로, 미국도 30세 이하의 신문 구독자는 23%에 불과하고 독자의 평균 연령은 55세에 이른다.

반면 인터넷 사용시간과 TV 시청시간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계명대 김영문 교수가 진행한 인터넷 활용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절반 정도는 하루에 1~3시간 인터넷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 목적은 게임이 1위. 하루 평균 TV 시청시간은 3시간에 이른다. 하루의 8분의 1을 TV를 보는 것이다. 한국인 평균수명이 77세니 평생에 걸쳐 10년가량을 TV 보는 데 오롯이 바치고 있는 셈이다.

심각성을 먼저 인식한 미국에서는 10여년 전부터 `TV 턴오프 운동`을 벌여 수백만명의 동참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를 본으로 삼아 지난해 한국에서도 `TV 안 보기 시민모임`이 발족됐다. 올해도 지난 1일부터 1주일간 `TV 안 보기`행사가 진행됐다. 이 운동 첫해 EBS에서 방영된 `TV 끄고 살아보기` 실험방송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TV를 끄자 아이들이 질문을 시작했고 대화의 즐거움을 깨쳐갔다. 오는 사람을 반갑게 맞을 줄 알게 됐고, 조리 있는 말과 생각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하루가 길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 길어진 시간만큼 생활엔 여유가 생겼다.

활자와 영상, 읽기와 보기의 차이는 크다. 영상의 가장 큰 약점은 휘발성. 따라서 자극이 없으면 지속성을 갖기 힘들다. 그렇게 자극은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더 강한 자극은 중독을 불러온다. TV나 인터넷의 가장 큰 폐해로 꼽히는 것이 판단력 저하를 초래하는 중독성이다. 감각적인 영상에 대한 반응은 빠르고 쉽게 몰입하지만 그렇게 얻는 정보의 가치는 낮다. 영상을 통해 이미지를 주입시키지만 사고의 확장은 차단시킨다. 인터넷엔 무한한 정보가 떠다니지만 정제되지 않은 의견이 쏟아지고 익명의 상대를 비방하는 글이 난무한다. 짧은 댓글은 그때 그때의 감정을 배설하는 통로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래서 정보전달과 생각의 소통보다 긁기와 퍼나르기가 주가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종이는 평면이지만 신문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입체적이다. 크고 작은 기사로 이슈의 중요성을 한눈에 구분할 수 있고, 사설과 칼럼은 논리력과 비판력을 키워 독자에게 사고의 폭과 깊이를 넓혀준다. 책의 형태는 단순하지만 그것이 내포한 것은 다양한 정보와 교양으로, 무한한 상상력의 바탕이 된다. 신문과 책은 그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읽기를 유도한다. 읽기는 깊이 있는 사변과 날카로운 분석을 가능케 하는 힘. 신문이나 책은 `읽기의 즐거움`을 가장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인터넷의 속보성은 신문의 상대적인 느림과 비교된다. 그러나 지난 80년간 훨씬 빠른 라디오가 있었지만 신문은 계속 봐왔다. 지난 50년간 TV가 속보를 전했지만 신문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인터넷이 정해진 마감시간의 제약을 벗어나긴 했지만 실시간 보도로 모두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이런 신문의 생명력은 신문의 깊이와 정확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신문을 `믿을 수 있는 친구`로 표현하는 미국과 `신문을 안 보는 것은 수치`로 생각하는 일본도 사정은 같다. 선진국이고 `부자나라`일수록 독서량이 많고 신문을 많이 읽는다. 세계신문협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신문 발행부수는 1위가 노르웨이로 704.6부, 2위는 일본으로 653.5부, 그 뒤를 핀란드 스웨덴 스위스 등이 잇는다. 잘살기 위해서는 읽어야 하고 읽기가 경쟁력을 키운다.

에머슨은 `문학과 사회의 목적`에서 `보기 드문 지식인을 만났을 때 그가 무슨 책을 읽는가를 물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사람이 읽는 내용이 곧 그의 정체성이자 사유를 좌우한다는 뜻. 그만큼 읽기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해외 유명 지성이나 석학들은 풍요로운 사회를 꿈꾸는 종이지식의 힘은 여전히 크고, 활자의 생명력은 영원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일까. 묵은 책향기에 코를 박고, 신문 넘기는 작은 부스럭거림에 이끌려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오늘도 분주하다.

윤정현 기자 hit@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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