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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째 시각장애인 낭독봉사 김영섭씨

[국민일보 2006-04-21] 16년째 시각장애인 낭독봉사 김영섭씨  

[국민일보 2006-04-21]
[이런사람] 16년째 시각장애인 낭독봉사 김영섭씨

"좋아하는 책 마음껏 읽으며 봉사, 정말 감사할 사람은 바로 저에요"

“안녕하세요.” 가슴속에서 울려 나오는 ‘안나 아줌마’의 목소리는 60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또렷하고 힘이 넘쳤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하상장애인복지관에서 16년째 시각장애인 낭독 봉사를 하고 있는 김영섭(61·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2동)씨를 만났다.

천주교 세례명을 따 ‘안나 아줌마’로 불리는 김씨는 하상장애인복지관의 터줏대감이다.“여기서 나를 모르면 간첩이지요. 아마 지금까지 600권 정도는 녹음했을 거예요.”낭독 봉사는 책을 읽을 수 없는 시각장애인용 음성도서를 녹음하는 자원봉사다.김씨는 하루에 6∼7시간씩 일주일에 두 번 녹음한다. 워낙 독서를 좋아했던 김씨는 1990년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 봉사가 있다는 걸 알고는 주저 없이 이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봉사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김씨 생활의 일부가 돼 버렸다.

“제 목소리 대단히 크죠? 제가 가진 ‘달란트’(탤런트·타고난 재능)죠.” 원래 성우나 아나운서를 꿈꿨던 문학 소녀. 틈만 나면 책을 읽었고 먹을 것과 옷 살 돈을 아껴 책을 샀다. 웅변에도 소질이 있어 대회에 나가 상을 여러 번 탔다고 한다. 학창 시절 방송반에서 기량을 발휘했던 그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독서에 대한 열의만은 평생 사그라지지 않았다. 평생 읽은 책이 1만권 정도 될 것이라는 김씨는 요즘도 1년에 적어도 100권의 책을 읽는다고 했다. 독서광답게 존경하는 인물들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1만권, 이어령씨가 3만권을 읽었다고 하잖아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1년에 100권 정도는 읽는다고 했는데, 그 정도면 굉장한 독서가죠. 저는 1년에 100권을 읽겠다고 다짐해야 겨우 100권을 읽거든요.”

재산 목록 1호는 자신이 읽은 책들이다. 책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김씨는 책을 꼭 구입해서 읽는다. “제가 읽은 책들을 보면 뿌듯하죠. 우리 딸아이에게 유품으로 물려주면 제가 죽은 다음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지 않겠어요?” 오래된 책들은 이사하면서 대부분 버렸다지만, 지금도 집에 2000여권의 책이 있다고 한다.

카뮈, 카프카, 사르트르 등이 그가 좋아하는 대표적 작가들이다. 김씨는 문학 작품을 즐겨 읽고 실용서는 거의 보지 않는다. “문학 작품에는 천태만상의 인간들이 나오는데, 책을 읽으면 그들과 함께 당대를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녹음하는 책들도 그가 사랑하고 즐겨 읽었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한강 등 보통사람들이 읽기에도 벅찬 대하소설들도 여러 편 녹음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녹음하니 잘 틀리지도 않고 감정이입도 잘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내용 전달도 잘되죠.”

사실 낭독 봉사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2평 남짓한 녹음실 의자에 홀로 앉아 몇 시간씩 책을 읽어 내려간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좋아하지 않고는 하기 힘든 일이다. 보통 자원봉사자들이 한 달 정도 걸려야 한 권을 녹음한다면 김씨는 1주일 만에 같은 분량을 녹음한다. 자원봉사에 할애하는 시간도 많고 숙련도도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김씨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작가와 같은 존재다. ‘안나 아줌마’가 녹음한 작품을 골라 찾는 팬들이 적지 않다. 팬레터도 받고, 오며 가며 만나는 이들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듣기도 한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정보를 얻지만 그들은 그게 아니잖아요.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서 들어야하는데, 그들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죠.” 김씨는 봉사 활동을 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버릴 수 있었다고 한다. “저도 전에는 시각장애인을 보면 우리하고 분리된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봉사 활동을 하면서 후천적인 요인으로 시력을 잃은 분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우리도 언제 어떻게 장애인이 될지 알 수 없는 거잖아요?” 김씨는 “세상을 마음대로 보고 살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지만 일주일 일정이 꽉 짜여 있어 어린이집이나 시각장애인들 앞에서 직접 책을 읽어주지는 못한다. 그는 여느 직장인보다도 바쁜 주부다. 일주일 중 화요일과 금요일 이틀은 낭독봉사를 하고 월요일에는 성서를 공부한다. 수요일은 벌써 10년째인 서예 공부를 하고 목요일에는 산에 오른다. 김씨는 산 400여곳을 올랐다고 했다. 그리고 주말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김씨는 여행광이기도 하다. 매년 한두 번은 해외여행을 떠난다. 남편이나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 아니라 홀로 떠나는 여행이다. 인도, 이집트, 브라질 등 50여 나라를 여행했다니 여느 여행가 못지않다. 김씨의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테마는 역사 속 작가·예술가와의 만남이다. “독일에 가면 괴테의 생가를 가 보는 거죠. 그들이 남긴 흔적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만들어 오지요.”

김씨가 혼자 여행 다니기 시작한 지는 20년쯤 됐다. 김씨에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삶만큼 자신의 삶도 소중하다. “남편은 남편의 세계가 있고, 저는 저만의 세계가 따로 있죠. 같이하면 제약이 많아서 안 돼요.”

김씨는 등산, 여행, 봉사 활동 등을 맘놓고 할 수 있도록 이해해주는 남편이 고맙다. “어렸을 때는 가족 때문에 내 꿈을 접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결혼해서 아이들 엄마로, 한 남편의 아내로 살게 되니 나를 잃어버리게 되더라고요. 나를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여기저기 얽혀 있어 툭 털고 내 삶을 살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주어진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이 김씨의 인생 철학이다. “오늘 하루를 깨어나서 잠 잘 때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죠. 내 적성, 내 능력에 맞게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면 그나마 보람되게 잘 살았구나 평가할 수 있겠죠.”

그동안 읽은 책과 여행 등의 경험을 생각하면 책을 쓰고 싶은 욕심도 있을 법한데, 주변에서 책을 써 보라는 얘기를 들을 때면 번번이 손사래를 친다. “어휴, 어중이떠중이 다 글을 쓰면 읽을 사람이 누가 있어요? 나는 책을 읽는 사람 쪽에 서고 싶어요. 내가 책을 쓰면 동네 개가 웃을지도 몰라요. 책 읽어주는 여자가 저는 참 좋아요.”

김씨는 힘 닿는 한 낭독 봉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듣는 사람들이 괴로워한다면 그때는 그만둬야죠.” 인터뷰를 마치고 다른 일정으로 급하게 자리를 뜨는 그의 뒷모습에서 젊은이 못지않은 삶의 열정이 느껴졌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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