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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평화와 교류' 시즈오카에서 '부활'

[부산일보 2007-5-21]

한·일 '평화와 교류' 시즈오카에서 '부활'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고지에서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 첫 행렬


전쟁으로 자신을 세우려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는 결국 쓸쓸히 역사에서 물러난다. 그의 뒤를 이어 도쿠가와 이에야스(1541~1616)는 전쟁 대신 평화와 교류로써 새 세상을 연다. 덕분에 그가 연 바쿠후(幕府)는 메이지(明治)에 천하를 내줄 때까지 264년간 계속된다. 그 중심은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이지만 평화와 교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시즈오카(靜岡)다.
시즈오카에 다시 조선통신사가 행차했다. 지난 19일 오후 1~2시 시즈오카시 순푸성에서 시청까지 길은 화려한 옷과 깃발, 악기로 꾸민 조선통신사(정사 박종길, 재일대한민국요코하마 총영사) 물결로 넘실댔다. 행렬단은 330명 정도,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관련기사 29면

이로써 올해 일본에서 7번 정도 열릴 조선통신사의 첫 행렬이 선을 보였다. 주목할 만한 건 시즈오카현과 시가 직접 예산을 들였다는 점. 따로 행사를 맡을 '조선통신사400주년기념행사추진위원회'(위원장 김양기)도 꾸렸고, 국토교통성도 거들었다. 중앙과 지방 정부가 함께 뜻을 모아 이번 행사를 치른 셈.

조선통신사 행렬이 시즈오카에 지난 2002년 이후 5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선통신사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일본으로 간 지 올해로 꼭 400주년이 되기 때문이다. 시즈오카는 조선통신사가 쇼군이 있던 에도로 갈 때 꼭 거쳤던 곳.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는데 올해가 쇼군 자리를 물려준 이에야스가 순푸(駿府, 현 시즈오카)에 정착한 지 꼭 4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 행렬단이 출발한 순푸성은 1589년 이에야스가 직접 지었다.

이렇게 시즈오카는 조선통신사를 통해 평화의 시대를 이어갔던 이에야스의 뜻을 이어받아 조선통신사를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가려 한다. 시내 호텔에서 나눠주는 관광 팸플릿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고의 땅'이라는 것을 내세웠다.

이날 오전 10시 시내 마린터미널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페어'에서도 조선통신사에 대한 시즈오카의 높은 관심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조선통신사와 시즈오카가 어떤 역사를 맺었는지 적극적으로 알렸다. 진행 요원들은 등에 이에야스가 시즈오카에 정착한 것을 축하하는 뜻으로 '오고쇼(大御所, 태상왕) 400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옷을 입고 배지를 달았다.

조선통신사와 시즈오카와의 인연은 건물과 사찰에서도 느낄 수 있다. 현재 시즈오카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인 쿠노산 도죠궁(東照宮)과 세이켄지(淸見寺)가 있다. 19일 오전에 들른 세이켄지는 여전히 1천300년의 역사 속에 편액, 시문, 그림 등 조선통신사의 자취를 넉넉히 품고 있었다. 이에야스가 직접 심었다는 매화나무도 여전히 푸르렀다.

세이켄지는 조선통신사 12번의 사행 중 무려 10번 들렀던 곳이다. 1607년과 1624년에는 묵기도 했다. 지금은 철길과 높은 건물들이 있어 풍광이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300~400년 전 통신사 사행원들이 젖었을 감회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시즈오카시는 21세기 조선통신사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는 지자체임에 틀림없었다. 김양기 위원장은 "그동안 지워지고 잊혀졌던 조선통신사를 다시 부활시킴으로써 이에야스의 평화와 교류 정신이 갖는 현재 의미를 찾으려 한다"고 했다. 일본 시즈오카=김마선기자 msk@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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